'찰나'에 해당되는 글 150

  1. 2008.08.01 8월 4
  2. 2008.07.22 신경쇠약 5
  3. 2008.07.15 괜찮은 사람 7
  4. 2008.07.10 상심에 이러지 말자 9
  5. 2008.07.04 유리방패
  6. 2008.06.24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 2
  7. 2008.06.08 오늘
  8. 2008.05.31 오랜만에 4
  9. 2008.05.29 당신에게 나는 4
  10. 2008.05.19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4

8월

어김없이 시간이 흘러 이제 8월의 시작이다.

지난 몇 달 간은 불안과 피로에 찌들어있었던 듯 하여,

대체 왜 그랬지? 스스로에게 미안해진다.

마음이 지치고 그 지침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져 급기야 아파서 결근하는 사태에 링겔까지 맞게 됐다.

어쩌면 도망가고 싶어 스스로 아프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없이 나약한 나를 보면서, 어째 이런가 생각하다,

그래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걸 웃고 말았다.

그리고 누구든 그랬을 거라고 내 마음을 토닥인다.


지나간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말자.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한번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이러면서도 아직도 온갖 걱정을.. 엄마 일이 잘 해결돼야 할텐데 ㅠ)

하루에 열두번도 넘게 하는 다짐이지만, 연습하다보면 언젠가는 좀 더 의연해질 수 있으리라.

내일은 조조로 영화를 보고 도서관도 가고, 수다도 왕창 떨어야지.

즐겁고 행복하고 따뜻한 주말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나와 당신, 그리고 당신들께 행복한 8월, 행복한 하반기가 되기를.

신경쇠약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이 빙글, 돌아.
어지럽고 어지러워 현기증이 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할때 조차, 걱정을 하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신경쓰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함과 두근거림이 내 영혼을 잠식해.
아, 피해자는 이래서 끝까지 피해자인가봐.
작은 일에 예민하고, 이러고 있어도 되나 불안하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걱정과 불안 속을 헤매는 나날들.
이러다 내가 아프겠다. 거봐,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빙글빙글하잖아.
그만, 신경쓰지 말고 의연해지자.
다 잘 될테니,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말자.
지금 걱정한다고 뭐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잖아.
너무 잘, 완벽히 하려고 하지마.
그러니 자꾸 헛똑똑이가 되잖아.
조급함이 일을 그르쳐.




빨래를 널다가, 쓰러질 뻔 했다.
세상이 빙글, 돌아 벽을 잡고 간신히 버텼다.
덜컥, 겁이나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그래도 계속 가슴이 두근구근.
이렇게 주절거리기라도 해야 안정이 될 것 같아 벌떡 일어나 주저리주저리 자판을 두드린다.

다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그만 자자.

힘을 내.

괜찮은 사람

한해 한해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과 자세가 달라지는 듯하다.

생일이라고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은, 뭐 그런..

어제 하루, 묘한 기분 속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은 묵직했는데,

그것이 나이듦에 대한 무거움이라고 하면 너무 오바인가.

케잌 위에서 반짝이는 촛불을 보면서 아, 촛불이 왜 이렇게 많아, 생각하다가

멈칫, 해버렸다.

이제는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임을 새삼스럽게도 또 깨닫고 만 것이다.

반짝반짝 촛불을 한번에 끄지도 못하고, 소원 비는 것도 잊어 버리고,

올 생일은 그렇게 생각이 많았더랬다.

아, 생일이 뭐 별 거라고 말이지.. ㅋㅋ

약간의 우울증을 동반했던 생일이 지나고, 가만 생각해보니

결론은!

잘, 살아야겠다는 것.

현재에 충실하면서 나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것.

그리고, 내년 생일에는 지금보다 한 뼘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괜찮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것.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다짐이지만 그래도!

잘, 살자! 행복하게.


상심에 이러지 말자

<전략>

  그날도 잠에서 덜 깬 멍청한 표정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집게로 창가 재떨이와 소변기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이 주의 금언'을 언뜻 봤다. 계속 청소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다시 봤다. '논어'의 한 구절이었다.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며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樂而不淫 哀而不傷



  오줌이 묻은 양철 집게를 들고 서서 나는 웃었다. 한참 동안 웃었다. 웃음을 그치고 담배꽁초를 줍는데 다시 배시시 웃음이 터져났다. '이러지 말자'가 아니라 '이르지 말자'라고 해야 옳았기 때문이었다. 자꾸만 내 머릿속으로는 공자님이 이른 아침 왜 가야만하는지도 모르고 가야만 하는 부대 화장실에서 집게로 담배꽁초를 줍는 내 소매를 붙잡고 '김 일병, 이러지 말자. 우리 아무리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라고 애원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알겠습니다.
  보통의 남자들이 들으면 나를 향해 더이상 던질 비웃음이 없어 안타까워하겠지만, 방위병 생활을 하면서 난 참 많은 걸 배웠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면 현역병이든 방위병이든, 심지어는 예비군이든 총알을 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그때 처음 배웠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덤으로 배웠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 잘못 쓴 금언만큼 큰 깨달음을 주지는 않았다. 삶의 길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상심에 이러면 안된다.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잘 살아보자.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

얼마나 웃었는지, 이 글을 보고.
전철을 타고 가다가도 화장실 거울을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웃음이 났다.
슬픔에 이러지 말자, 슬픔에 이러지 말자. 이 문장만 생각하면 왜 그리도 웃음이 새어나오던지.
아, 얼마나 절묘한가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날 때, 분할 때, 짜증날 때면 이렇게 중얼거리는 나를 보곤한다.
슬픔에 이러지 말자. 짜증에 이러지 말자.

아, 정말. 짜증에 이러지 말자. 상심에 이러지 말자.

+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요즘들어 더,
작가 김연수에게 반하다.
최근 출간한 '여행할 권리'도 기회되시면 읽어보시길.

유리방패

  "그러고 보니 처음이 어딘지 잘 모르겠네. 어딘가의 갈림길에서 여기로 온 걸 텐데 말야."
  "넌 꿈이 뭐였지?"
  "꿈? 새삼스럽게 꿈은 왜 물어본대? 유치하게스리......"
  M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언젠가 M은 내게 정원관리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적도 있었고, 동물원의 사장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어떤 것이 M의 꿈인지 모른다. 셋 모두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M이 버스 유리창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M을 지나 내게로 왔다. M은 창밖으로 고개를 반쯤 내밀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뒤창문을 내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우리가 온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이름붙일 수 없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도 말할 수 없는, 내 삶의 어떤 한 시절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김중혁, <유리방패>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

피곤한 몸으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서 목까지 이불 끌어당겨 덮고 발가락 꼼지락 거리는 순간,

운전하는 오빠 옆에 비스듬이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출근길 지하철, 용케 자리에 앉아 커피우유(요즘은 덴마크 우유에서 나온 카푸치노)를 마시며 스윽, 책장을 넘기는 순간,

누군가의 싸이에 들어갔을 때 좋아하지만 자주 듣지는 못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얼른 필름스캔 하고 싶어 십여 장 남은 필름을 마구 써버리는 순간,

새로 산 책에 책도장을 찍는 순간,

딱 예쁘게 잘, 찍힌 책도장을 보는 순간,

계간지 표지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보는 순간,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평범한 장면이나 아무것도 아닌 글귀를 읽고 혼자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

비오는 날 맥심 커피믹스 향기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순간,

늦게 들어온 날 안방에서 엄마와 아빠가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문득 생각나 문자 보내야지 생각하는데 띠리링, 그 사람에게 문자가 오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작은 선물을 고르는 순간,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샤워 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맥주캔에 맺혀 있던 물기를 잠옷 바지에 쓰윽 닦는 순간,

서점 매대에 누워있는 책들을 건들거리며 훑어보는 순간,

당신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그 순간,

쨍하게 추운날 아침 목도리 칭칭 감고 눈과 코만 내민 채 발을 동동거리는 그 순간,

쏴아, 소나기가 내리는 순간,

내가 쓴 글을 화면에 띄워놓고 인쇄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

생각해보면, 좋은 순간들이 더 많은데...

순간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

순간을 사랑하며, 믿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나는,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도 되겠다는 생각.

오늘

춘천

기차

친구

분홍빛 남방

강바람

선생님

산토리니

서면

미스타페오

송충이

이야기

포스코더샵

이모

오만원



마음과 다 하지 못한 말.

오랜만에

잠깐의 여유를 부렸다.
병원에 들렀다 나오는 길
볕이 너무 좋아, 어지러웠다.
곤두서있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다.
지난 봄 이쁜 맘이 담긴 할리스 기프트콘을 이제야 사용했다.
맘이 담긴 카페라떼 한잔과 베이글을 앞에 두고 이제 6월이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생각을 했다.
요즘 출퇴근 시간에 보곤 하는 '장미없는 꽃집'을 보다가
한 시간을 채 못 앉아 있고 나왔다.
멀리 내리는 버스를 타고 집까지 걸으며 휘마로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셔터를 누른 지 한달도 더 되었다.
뭉텅이로 잘려나간 것만 같은 그 시간과 그 원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억울했다.
그로인해 하지 못했던 일들과 흘러가버린 날짜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마음들을 다스리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방법을 모르겠다.
왜 이다지도 어리석은가 말이다.
이러다 내가 상하고 말겠다. 알면서도 계속 스스로를 상하게 하고 있다니.

6월이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나조차도 때론 놀라는 나의 모습들 중, 그 수 많은 모습 중에서 당신이 기억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이미지들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고 때론 억울하기도 한데
어쩌면 그 중에 진짜 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당췌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만 가득한 요즘.
몸, 그보다는 마음이 지치고 있는 요즘.

비타500이나 사마셔야겠다.
'ㅁ'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 속담이다.

이 속담은 티베트의 칼날 같은 8월의 쨍한 햇빛을 닮아 있다.

살을 파고들 것만 같은 말이다.

내가 지금 걷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병률, <끌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