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해당되는 글 150

  1. 2009.04.28 그냥 그런 이야기 8
  2. 2009.04.21
  3. 2009.04.20 봄비가 온다 4
  4. 2009.04.18 2
  5. 2009.04.18 2
  6. 2009.04.01 사물이 말을 걸어올 때,
  7. 2009.04.01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8. 2009.02.10 며칠 후면 3
  9. 2009.02.07 지금
  10. 2009.01.12 그녀가 돌아왔다 6

그냥 그런 이야기



잘 모르겠는 요즘의 나.
그런데 사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늘 어중간하거나 모르겠거나 자신없거나, 그랬던 것 같아.
소설만 해도, 달려들어서 열심히 쓰거나 안 쓰거나 하지 않고
내가 정말 소설이 쓰고 싶은 걸까, 쓰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를 늘 고민했었지.
생각해보니 참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네.
모든 일에서 그랬던 것 같아.
내가 정말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그리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는 것을 참 두려워 했었어.
지금도 그렇고, 그래서 힘이 들었던 거겠지.
어쩌면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건지도.
잘 들여다봐. 겁내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내 마음을. 그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어쩌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리하려 하지 말고 정의 내리려 하지 말고
그냥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 건데
거기에서 이유를 찾으니까, 확실하게 정리하려고 하니까
자꾸만 본질에서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건 아닐까.



무심히, 라는 말이 주는 울림

photo by EastRain

봄비가 온다

봄비다.
봄비는 봄봄봄 하고 오는 것 같다.
봄비가 반갑다
봄비도 내가 반가울까.
봄비를 보면서 커피를 마신다.
봄비라면 뿌연 이 마음들을 말갛게 씻어내 줄 수 있을까.
봄비 속에서 마음이 둥둥둥 떠다닌다.



찍는다는 건

혹은

쓴다는 건

혹은

산다는 건

혹은

사랑한다는 건



Photo By EastRain



흐릿한 내게 괜찮다고 말해본다


Photo By EastRain

사물이 말을 걸어올 때,


  어떤 사물이, 또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그렇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보거나 듣는 그 순간에 즉각적으로 마음을 울릴 때도 있지만 오래도록 잊혀졌다가 살그머니 살아나 제 어깨에 손을 올려놓기도 합니다. 그때, 그 손길에 돌아보고 그 말뜻을 되새기고 받아적는 제 손은 한없이 굼뜨고 무딥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 무성히 벋은 뿌리에 든 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작 말라죽은 가지 하나를 붙들고 뒤척일 때가 더 많습니다.

이혜경, 제47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 中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내가 액자 그림을 오래 올려다보고 있은 모양이다. 장포수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계속 궁금해하고 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바위 그림이 왜 중요해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또 가만히 있었다.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나은지, 기억하는 게 좋은지.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다른 방식으로 물어보았다. 기억하는 일이 힘들고 따가워도 기억해야 하는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오래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아버지가 기증한 물건들이 전시된 방을 바라보았다.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걸."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에서 반복했다.

김형경, 꽃피는 고래 中

며칠 후면



친구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이제 일년 후에나 볼텐데..
그 시간들은 때론 빠르게 때론 더디게
그러나 어김없이 공평하게 흘러가겠지.
시덥잖은, 그렇지만 사실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얘기들을 풀어놓던 잠깐 잠깐의 시간들이
이젠 더 소중하고 애틋해질 것이다.
이렇게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두런두런 얘기하던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삶을 살아내다 다시 만난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당장은 아쉽고 허전하다.
전화도 잘 안되고 메일도 쉽지 않고,
순간 순간의 마음을 함께 나누기가 어렵다는 걸 지난 일년 동안 겪었기에.

허나 기대하기로 한다.
그녀와 나의 일년이 그 어느때보다 찬란할 것이라는 걸.
혹여 찬란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반짝, 하고 빛날 수 있을 거라고.

지금

뭐해, 라고 물어주는 친구의 문자,
무심한 듯 내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당신의 목소리,
깜빡이는 한글 커서,
적당히 따스한 햇살,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
잊지 말아야지.


그녀가 돌아왔다



일년 만에 그녀가 돌아왔다.
하얗게 입김 나오는 오전, 인천 공항을 서성이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꼭 애인을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사실 전광판을 보면서도,
오늘 귀국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제전화를 하면서도,
그녀가 한국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게이트를 나오는 그녀를 보면서도 여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너무나 반갑다는 것.
그리고 여전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나타나주어 고맙다는 것.
멋지게 일년을 보내고 만나자고 했었는데
그 약속 때문에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지난 일년은 그녀에게 어떤 무늬를 남겼을까.
잠시 돌아온 시간, 그 짧은 틈틈히 그 무늬들을 훔쳐봐야겠다.



함께 마중 나간 똥글언니와 함께 슉이 그 순간 제일 먹고 싶었다는 와퍼를 신나게 해치우고
그래도 아쉬워 인천공항 안 파리크라상에 자리를 잡은 우리.
시간이 무색하게 터지는 웃음들 그리고 이야기 이야기.
이런 사소하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그리웠어.
반가워 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