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순간들

피곤한 몸으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서 목까지 이불 끌어당겨 덮고 발가락 꼼지락 거리는 순간,

운전하는 오빠 옆에 비스듬이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출근길 지하철, 용케 자리에 앉아 커피우유(요즘은 덴마크 우유에서 나온 카푸치노)를 마시며 스윽, 책장을 넘기는 순간,

누군가의 싸이에 들어갔을 때 좋아하지만 자주 듣지는 못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얼른 필름스캔 하고 싶어 십여 장 남은 필름을 마구 써버리는 순간,

새로 산 책에 책도장을 찍는 순간,

딱 예쁘게 잘, 찍힌 책도장을 보는 순간,

계간지 표지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보는 순간,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평범한 장면이나 아무것도 아닌 글귀를 읽고 혼자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

비오는 날 맥심 커피믹스 향기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순간,

늦게 들어온 날 안방에서 엄마와 아빠가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문득 생각나 문자 보내야지 생각하는데 띠리링, 그 사람에게 문자가 오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작은 선물을 고르는 순간,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샤워 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맥주캔에 맺혀 있던 물기를 잠옷 바지에 쓰윽 닦는 순간,

서점 매대에 누워있는 책들을 건들거리며 훑어보는 순간,

당신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그 순간,

쨍하게 추운날 아침 목도리 칭칭 감고 눈과 코만 내민 채 발을 동동거리는 그 순간,

쏴아, 소나기가 내리는 순간,

내가 쓴 글을 화면에 띄워놓고 인쇄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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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좋은 순간들이 더 많은데...

순간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

순간을 사랑하며, 믿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나는,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도 되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