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11건
- 2010.03.27 바람이 분다, 가라 12
- 2009.05.04 미소 2
- 2009.04.01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 2009.03.19 ★ 2
- 2008.11.30 다시 만나다 2
- 2008.11.08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 2008.08.18 -
- 2008.08.05 문학
- 2008.07.06 무방향 버스
- 2008.06.23 섬 8
- 바람이 분다, 가라
- 찰나
- 2010. 3. 27. 00:21
요즘 읽고 있는 한강의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읽기가 힘들다. 더디다.
'안 읽힌다'는 것이 아니라,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다는 얘기다.
작가의 말에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라는 글귀가 있다.
그 살얼음이 내게도 박힌 것인가.
- 미소
- Minolta x-700
- 2009. 5. 4. 21:12
-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 찰나
- 2009. 4. 1. 23:36
"그런데 이 바위 그림이 왜 중요해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또 가만히 있었다.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나은지, 기억하는 게 좋은지.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다른 방식으로 물어보았다. 기억하는 일이 힘들고 따가워도 기억해야 하는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오래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아버지가 기증한 물건들이 전시된 방을 바라보았다.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걸."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에서 반복했다.
- ★
- Minolta x-700
- 2009. 3. 19. 21:20
- 다시 만나다
- Minolta x-700
- 2008. 11. 30. 22:55
소설가 신경숙.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작년 여름 삼청동에서 뵜었다고 말을 건넸다.
(실은 부암동이었는데)
그녀가 내게 말했다.
꿈을 이루세요, 라고.
Minolta X-700
Lucky Color 200
-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 카테고리 없음
- 2008. 11. 8. 23:15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저는 이곳으로 완전히 정착할 준비를 시작해야 돼요. 그때가 되면 더이상 편지는 쓰지 못할 거예요. 지구와 달을 오가는 우체부는 없으니까요. 만약에 그런 날이 오더라도 엄마, 제가 있는 곳을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 어디쯤으로 떠올리진 말아주세요. 생각하면 엄마의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으로, 아, 그래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지난 백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동양인 이민자들이 그렇게 젖은 눈으로 금문교를 바라봤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문교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목소리가 숨어 있다. 귀를 기울이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학은 그런 목소리를 외부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가 그 목소리로 증명된다. 반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 즉 입술이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디부터 정치적이다.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학이란 그들을 대신해 소리를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문교가 있는 한, 누군가는 이민자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드러낼 것이다.
치카노 문학이라는 것 역시 그런 식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버클리에서 문학행위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까닭 역시 여기에는 아직도 말을 빼앗긴 존재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한국에는 이제 더이상 말을 빼앗긴 존재가 없다는 뜻일까? 금문교를 바라보면 그런 의문이 자꾸든다.
<중략>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쓰게 될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혹시 한국에서 자꾸만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문학이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쓸 수 있을 때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써야만 하지 않을까?
*
문학이란, 문학이란, 문학이란.....
킬킬대며 웃다가 멈칫, 마음이 숙연해지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읽었던 문장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게 되는 김연수의 수필집.
*
오랜만에 꽤 괜찮은 책을 만난 듯하여 배가 부르다.
"그럼 238번은 어떤 버스인데요?"
"10년 동안 한 번도 길이 바뀌지 않은 버스야. 가끔씩이라도 노선이 바뀌는 버스들은 그나마 무방향 버스가 될 확률이 아주 낮지. 하지만 238번 같은 경우는 말야, 새로운 길도 생기지 않았고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게다. 무방향 버스가 될 만하지."
농담을 하고 있나 싶어 강과장의 옆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는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에게도 담배를 권했다. 담배향이 진했다.
"너희 어머니는 아마 무방향 버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무방향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 하지만 무방향 버스를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오랫동안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되거든."
"무방향 버스를 타고 어디로 사라지는 거죠?"
"거참,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나도 타본 적이 없는데."
- 김중혁, <무방향 버스 - 리믹스, '고아떤 뺑덕어멈'>
잠은 언제나 운모조각처럼 얇았고, 작은 소음이나 커튼 틈으로 스며든 빛살에도 쉬 바스러졌다. 큰 독에 장아찌 담그듯 차곡차곡 집어넣고 넓적한 돌로 단단히 눌러놓은 기억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돌의 무게를 견뎌내고 솟구치려는 기운은 밤이면 더 기승했다. 하루에 너댓 편의 꿈을 꿨다. 꿈속에서, 발효해버렸으면 싶은 기억은 양념이 다 삭아 어우러진 신김치 속에서도 제 맛을 주장하는 생강조각처럼 도드라졌다.
- 이혜경, 섬
* 마음에 결을 남기는 문장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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