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해당되는 글 150

  1. 2009.09.25 오 늘 14
  2. 2009.09.09 요즘 6
  3. 2009.08.12 지금 8
  4. 2009.08.11 원냥 10
  5. 2009.07.24 이 두 손으로 10
  6. 2009.07.14 생일 축하해 17
  7. 2009.07.07 - 2
  8. 2009.06.02 나의 16
  9. 2009.05.25 ▶◀
  10. 2009.05.06 7

오 늘

부여, 에 다녀왔다.
난생 처음 가본 곳.
서울부터 내 머리 위에 떠다니던 구름이 기어이 부여까지 쫓아왔나 보다.
종일 나를 따라다니는 구름들 구름들 구름들.
가는 순간까지 갈까말까를 망설이다, 느즈막히 버스를 타고(가만보면 늘 이런식이다. 어차피 갈 걸 왜 고민하는지)
더 느즈막히 도착한 부여는, 뭐랄까.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고, 어디서 나같은 여자애 하나 툭 끼어들어도 전혀 깨어지지 않는 그런 공기.
그런 심드렁함이 오히려 나는 반가웠다.
할랑할랑 걸으려고 했는데 평소 습관 버리지 못하야 또 시간 계속 들여다보고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빨리빨리빨리 걷고 있었다, 내가.
부소산성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실 조금 무서웠다.
한적하다 못해 을씬년스러운 숲길에 혼자 있자니
마치 자, 이렇게 멍석을 깔아놓아 줬으니 어디 생각이란 걸 해봐, 라고 명령 받은 것 처럼 좌불안석.
에라 모르겠다. 내처 걸었다.
웃긴 건 그렇게 걸으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는 것. 사람이 없다는 게, 무서웠다.
비가 듣기 시작할락말락한 부소산성에는 가끔 산책 나온 주민들이 있었고 그보다 자주 다람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물 받은 엑시무스를 들고 왔는데 날씨가 이래서 어쩐다 하면서도 찍었는데 아마 안 나오겠지.
이런 저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면서,
부소산성 올라 오기 전 편의점에서 샀던 투명우산을 질질 드르럭드르럭 끌면서,

간혹 지팡이 삼기도 하면서,
낙화암에 도착했다. 사실 별 느낌은 없었다.
그냥 걸어걸어 간 것일 뿐, 꼭 무엇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신기한 것이 저 멀리 보이는 백마강을 보고 있으니, 그렇게 혼자 보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해졌다는 것.
그리고 좀 무서웠다. 낙화암이라는 존재 자체가.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궁녀들을 기린다는 그 곳 자체가, 그것을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서웠다.

내둥 나 혼자였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워 돌아보니
어디서 뿅 나타났는지 대포 카메라를 든 남자와 여자가 시끄럽게 얘기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무서웠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저절로 인상이 찌푸러들었다. 좀 조용히 좀 하지.
바로 고란사로 향했다.
고란사로 가는 길은 여태 걸어왔던 길과는 다르게 경사가 져 있어서 내 저질 체력으로는 버거웠다.
아주 작은 경내(라고 하기도 민망한)에 들어서서 잠시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결국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어색한 거 였다. 괜시리 혼자 머리를 긁적이며 헛기침을 해대다가
사실 삼배를 하고 싶었는데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아서
불상 앞에 놓인 함에 천원 짜리 한 장을 넣고 두 손을 모으는 것으로 대신했다.
무언가 간절해지는 마음. 무엇이 간절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고란사 옆에는 배를 타고 입구까지 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지만, 잠시 망설이던 나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나가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이 힘들어, 오히려 그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날씨도 습해서 걷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부소산성을 다 돌아보려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하여 나는 이렇게 반만 보고 내려왔다.
너무 늦게 도착하여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목적지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보통 부여는 하루 동안 걸어다니며 보기 괜찮은 곳이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시간이 여의치 않았던 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궁남지 중 하나를 택해야 했고,
고민하다가 택시를 타고 석탑을 보러 갔다.

터만 남아있는 곳에 덩그러니 있을 석탑이 보고 싶었던 게다.
정림사지에는 흔적만 남아있는 절터와 박물관과 석탑이 있다.
박물관,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표를 끊으면서 기어이 박물관 안 볼 건데도 입장권 사야 하나요? 라고 소심하게 물었다.
대답은 뭐 그리 당연한 걸 새삼스레 묻느냐는 듣한 안내원의 표정으로 대신.

탑만 얼른 보고 궁남지에 가봐야지, 하며 들어갔는데 저 멀리 탑 주위를 까맣게 메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니!
부소산성 주차장에서 보았던 모 대학 관광버스의 주인공들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박물관에 들어갔다. 슬슬 둘러보고 나오면 가고 없겠지 싶어서.
예상 외로 박물관은 깨끗하고 잘 꾸며져 있었다
가만 가만 걸어다니다가 나오니 학생들이 입구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옳다구나, 탑 쪽으로 가는데 우르르 이동하는 학생들을 거스르며 걷는 꼴이 되어 버렸다.
나를 보는 그 아이들의 표정이라니.
저 여자 뭐야?
니들도 나이 들어봐라, 나는 괜히 혼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의연한 척 하며 탑에게 갔다.

석탑은 정말 덩그러니 거기 놓여있었다.
기이했다.

석탑 주위로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그 모습 역시 기이했다.
시간이, 나만 빼고 흘러가는 것도 같았고,
내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따로인 것도 같았고,
석탑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둥둥 떠있는 것도 같았고.

석탑을 한 바퀴 삥 돌았을 뿐인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올려다 보니 그때까지 나를 따라온 구름 아래에서 석탑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게 왜 그리도 새삼스러운지. 그리고 고마운지.
언제까지고 석탑은 거기 그렇게 있을 테니까, 언제고 그렇게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있을 테니까.
무언가 안심이 되어서 씩씩하게 걸어나왔다. 거 참 이상하다.
거기에 석탑을 그렇게 남겨두고 궁남지를 향해 걸어갔다.
막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걸어도 궁남지는 나오지 않아 어쩌나 망설이며 계속 걷다가
결국 지나가는 택시가 보이길래 집어 타고 터미널로 갔다.

표를 끊고 이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아 차에서 먹을 김밥을 사고 터미널 근처 시장을 살짝 돌아보고 버스에 올랐다.
무언가를 계속 생각했는데 사실 정작 해야 할 생각들은 하지 못했다.
여행이란 게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바람을 쐬거나 뭐 그래서 간다고들 하고,
나도 사실 그런 명목을 내세워서 가는 거긴 하지만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될수록 알겠다.
사실, 그냥 도망가고 싶은 거라고.
아주 가지도 못할 거면서, 그냥 거기서 도망치고 싶고, 그 시간을 마주하기 싫어서 라고.
그래서 나,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 안고 돌아왔다.
거기 탑 하나를 남겨두고.

요즘


하나. 신경쇠약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고 말하지만 내겐 그렇지 않은 것들)로 걱정하고 있는 모습, 오래되었다.
이러다 정말 땅이 꺼지면 어쩌나 싶어 길을 못 걸어다니지는 않을런지 심히 걱정된다.
완전 위험 수위.



둘. 관계

이것을 정의내릴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어른이겠지. 패쓰.





셋. 가을

심적인 가을이라기 보단 슬슬 공기 냄새가 달라지고 있다.
초저녁부터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도 한몫을 한다.
그런데 좀 너무 시끄럽기는 하다.
해마다 매미 울음 소리가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넷. 김연수

퇴근길 발가락이 간질거렸다.
도착해 있을 그의 신작 단편집 때문에.
처음 보는 그의 글씨체.
미음을 나랑 비슷하게 쓰는구나(라고 갖다 붙이고 좋아한다).
아홉 편의 작품 중 세 편은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었다.
두근두근, 베시시.

+) 윤성희, 이혜경 님의 작품집은 언제 나오려나. 나, 더 베시시, 하고 싶은데.



다섯. 불면증

이젠, 나의 삶이된 걸까. 싫다는데도 자꾸만 붙어 있네.



여섯. 속담

어둑서니는 올려다볼수록 크다  :  밤중에 환각에 의하여 나타나는 어둑서니는 겁을 먹고 올려다보면 볼수록 더욱 커지기만 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할 때 겁부터 먹고 하면 점점 더 용기를 잃고 겁을 먹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하다가 발견한 속담인데,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속으로 뜨끔.






이런 저런 이야기,
퐁퐁퐁.
타닥타닥. 타...닥.타닥. 타....닥......타......................닥.


지금

사모해 마지않는 김연수 작가의 블로그에서는 이름하야 '무조건답급의일주일'이 진행 중이다.
오늘이 마지막날인데, 댓글에 댓글에 댓글들을 읽으면서
위로 받았다.
우리가 우리라서.

어영부영 서른이 코앞이다.


............................



맥주를 마셔야겠다.

원냥


삼청동을 걷다가 인사동 쪽으로 내려가려고 풍문여고 쪽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앗, 하다가, 아닌가, 했더랬다.
저만치서 걸어가고 계시는 박완서 선생님.
예상보다 훨씬 젊어(?) 보이셔서 비슷한 분인가 했는데 맞았다.
동행했던 언니와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졸졸 쫓아가서 사인을 부탁드렸다.
책이 없던 것이 안타까웠다. 내게 있던 것은 마법스프 다이어리 뿐.
평소 너무도 좋아하던 일러스트가 선생님 앞에서는 어찌나 민망하던지.
곱고 작고 그러나 강한 느낌.
그 앞에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 따윈 감히 할 수가 없어 침 한번 꿀꺽 삼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원현정 양, 이라니. 이런 호칭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내가 원냥으로 불린다는 것을 아셨던 것인가! ㅋㅋ)

소설가, 라는 이름.

언젠가, 그 분 앞에서 그날을 회상할 날이 있을까?


+) 울퉁불퉁한 내 손이 밉지만 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이 사진을 골랐다.

이 두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은




photo by EastRain

 

생일 축하해



이로써 올해도 반이 지났다.
항상 생일이면 왠지 모르게 허탈했는데, 아마도 그 시기 때문이지 싶다.
생일이 별 건가 라고 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것인지
생일이 다가오면 속으로 마냥 들떠하는 스타일이다.
혼자서 괜히 두둥- 두둥- 하는 맘으로 생일 즈음을 보내곤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다른 무늬로 다가오는 생일이라는 녀석.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정신없이 얼렁뚱땅 휘리릭 가버린 상반기를 뒤로 하고 남은 시간을 알짜배기로 만들어야겠다.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매력적이고 건강한 나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나 자신에게 인사한다.
생일 축하해!
앞으로도 쭈욱, 아름답고 건강하게, 잘 부탁해!



-

  호수 반대편까지 달려갔을 때는 온몸이 다 젖었고 운동화로는 물이 스며든 상태였지만, 그때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한 30분 정도 달렸을까. 문득 바람이 불어오는 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 서쪽 하늘은 환해지고 있었다. 서쪽 하늘은 검은빛이었고, 어떻게는 푸른빛이었고, 또 달리는 하얀빛이었는데, 그게 하도 인상적이어서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가만히 서서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봤다. 하늘 전체를 뒤덮은 구름은 빠른 속도로 밝아지고 있었고, 지평선에서 한뼘 정도 위로는 날이 개리라는 걸 암시하는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구름이, 그다음에는 바람이, 그리고 저녁이, 또 계절이, 그렇게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 풍경 속에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으므로 오히려 나는 숨이 편안해질 때까지, 바람이 젖은 내 몸을 차갑게 만들 때까지,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후두둑 떨어져 내릴 때까지, 그리하여 그 구름들 틈새로 푸르스름한 하늘이 엿보이게 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中

나의



미놀타

그리고 햇살 한가득

그녀와의 데이트


▶◀



우리는 말 할 자격이 없어요.




가리면 쫌 나아요 :)

By East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