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해당되는 글 150

  1. 2010.02.11 심란 16
  2. 2010.02.05 지난 가을 18
  3. 2010.01.27 - 8
  4. 2010.01.18 - 2
  5. 2009.12.31 안녕 2009, 안녕 2010 10
  6. 2009.12.27 선물 12
  7. 2009.12.25 큰맘먹고 6
  8. 2009.12.09 4
  9. 2009.12.08 시트콤2 9
  10. 2009.12.05 첫눈 14

심란

  아, 오랜만에 뭘 좀 해보려 했는데. 나름 설렜는데. 역시 한 번에 다 주시지는 않는 것인가.
  계획이 어긋날 조짐이 보여서 침울하다.

  그치만, 기다려 보고 기대해 보자. 다른 길이 분명 있을 테니.


  없음, 까짓 만들지 뭐 ㅠ.ㅠ

지난 가을



봉평에서

photo by EastRain




+) 한창 힘들 때였는데 하늘은 맑기만 하고 코스모스는 어여쁘기도 하더라.

-



국물을 마셔, 튀김이 좀 딱딱해, 만든 지 오래된 것 같아, 라는 노목희 말의 그 사소함과 명료함이 문정수는 문득 슬픔으로 느껴졌다. 슬픔은 난데없고 가늘고 날카로웠다.


노목희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서 문정수의 잔에 따랐다. 차가운 소주가 목구멍을 훑고 내려갔다. 문정수의 야근일수는 한 달에 13일 정도였다. 문정수는 새벽에 마시는 소주 맛의 긴장에 익숙해 있었다.
- 아, 시원해. 목구멍 속에서 눈보라가 날리는 것 같다. 새벽엔…….
- 새벽 소주에 젖어드는 거겠지. 점점…….


젓가락으로 김치를 마주 잡고 찢어 먹는 하찮음이 쌓여서 생활을 이루는 것인가. 그 하찮음의 바탕 위에서만 생활은 영위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소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의의 들판으로 생활은 전개되는 것인가. 그 사소함이 견딜 수 없이 안쓰럽고 그 적의가 두려워서 나는 생활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이렇게 쭈볏거리고 있는가.


해망의 빈 시간은 난감했다. 저녁의 빈 시간들은 엉성했다. 갯고랑 수로의 밀물이 노을에 붉었고 공룡 발자국에 고인 구정물이 붉었고 원효의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붉었다. 시간의 미립자들 틈새로 노을은 스몄는데 노을이 시간의 그물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서 시간은 노을이 묻지 않았다.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문정수는 혼자 저녁을 먹었다.


문정수의 목소리는 메말랐고, 자음이 모음에 잠겨서 이명처럼 들렸다.


- 김훈, 공무도하 中




+) 아무렇지 않은 듯 날카롭게 가슴을 치는 김훈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추천.


-

"이봐, 게이고."
 하며 불쑥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왜요?"
 "아니, 그 뭐냐, 잊으려고 하는 건 말이야, 참 어려운 일이지, 난 그렇게 본다."
 "네?"
 "아니, 그러니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인간이란 건 말이다, 잊으면 안 되는 걸, 이런 식으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
 "이런 식으로라니요?"
 "아니, 그러니까, 잊어야지, 잊어야지 노상 애를 쓰면서……."


- 요시다 슈이치, 일요일들 中



잊어야지 노상 애를 쓰면서,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안녕 2009, 안녕 2010






항상 이맘 때면 마음이 싱숭생숭.
그렇지만 또 막상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무덤덤하다.
한 해를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청소를 시작했다가 감당이 안 돼 시늉만 대충하고
대신 저금통을 뜯었다.
일 년 동안 모은 건 아니고 중간 부터 모은 건데, 심심해서 쿠키로 찍어보았다.
(목적은 송년기념 포스팅인데 사진이 너무 엄한가? -_-)
한 쪽 저금통에는 500원 짜리만 모았는데, 음, 역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수시로 빼 쓰다 보니 몇 개 안된다.
일렬로 늘어 놓고 세어 보니, 실적이 저조하다.
5만원이 채 안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 중이다.


이렇게 한 해가 간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무사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오늘로 20대와 안녕한다.
일 년 동안 아 서른, 아 서른, 노래를 부르며 살았는데
막상 오늘이 되고 보니 무덤덤한 마음에 살짝 민망하다.
도대체 왜 미리 서른을 산 것일까. 미련하기는.


사모하는 김연수 작가가 블로그에
'새해에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라고 쓰셨던데,
그 말이 참 위로가 된다.
덧붙여 삼십 대가 더 좋다는 말도.

새 해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여기 이렇게 내가 있어 다행이고, 거기 그렇게 당신들이 있어 다행이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선물









혼자 찜 해뒀던 다이어리가 있었는데 지인이 선물이라며 쑥 내민다.
보고 또 보고 좋아라 한다.
받을 때는 물론 좋고 줄 때는 더 좋은 선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어서라도 돈을 벌긴 해야 겠다(뭔가 결론이 이상하다).


모두에게 선물 같은 2010년이 되길 바라며.



한 해의 끝에 안녕, 인사 한다.


큰맘먹고


내년 다이어리에 날짜를 적어 넣었다. 큰 맘 먹고.
일단 날짜만 적었다. 그리고 더 나가지 못했다. 아. 아니구나. 인덱스도 붙였다.
아무것도 못하겠다.
가만, 있는 것도 못하고 요즘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혹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피하기 위해 수시로 돌아다닌다.
정처없는 마음은 딱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어째 끝이 안 보인다.
내일은 날짜 밑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을 적어야지.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잠깐의 펑펑눈.

아쉬운 마음에 쿠키로.

쿠키의 카메라는 정말 파이다. 쳇.

시트콤2

  정줄을 놓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어제 하루.
  팩스를 보낼 것이 있었다. 두 군데에. 그런데 보란듯이 양쪽을 바꿔 보냈다. 문구점 직원에게 팩스 송부를 부탁하면서 두 군데니까 구분해주세요, 하고서는 당당히 번호는 양쪽을 바꿔 불러주었다.
  그것이 전조였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양쪽 서류가 바뀐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허둥지둥. 다시 보내려면 카페 밖으로 나가야 하고 , 그렇게 되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놋북 끼고 죽치고 앉아있을 생각이었던 내 계획이 어긋난다. 그래서 카페측에 문의했더니 고맙게도 카페 팩스로 보내주신다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서류를 다시 보내면서  일이 꼬여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 허둥지둥 게이지는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받아야 할 서류까지 생겨서, 카페의 팩스로 받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팩스는 오지 않았고, 시간은 가고, 나는 초조해지고, 팩스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운터 쪽과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바지 주머니를 만져봤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두툼한 돈봉투가 있어야 했는데, 주머니가 홀쭉했다.
  돈 좀 뽑아와. 삼십만원.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 잔소리 하려는 엄마의 말을 막으며 아 알았어! 라고 볼멘소리를 했던 전화통화가 떠오르면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튀어올랐다. 일단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옷 입다가 떨어진 건가. 이거 누가 오늘 횡재하는 거 아닌가 ㅠ 뛰어가면서도 바지 주머니를 계속 만졌지만 있을리 만무. 화장실문을 냅다 열고 카운터로 뛰어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여기 돈 들어온 거 없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지만, 그땐 저렇게 말했다(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ㅋㅋ).
  "무슨 돈이요?"
  "삼십만원이요!!"
  "어디에 들어있는데요?"
  직원의 이 말에 일단 안심이 되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은행봉투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직원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꼭지에 대고 소리쳤다.
  "수표 한 장이랑 현금 섞여있고요!"
  아아아. 직원이 봉투를 들고 나온다. 가방에 넣으면 자리 이동하느라 불안할 것 같아 잘 간수한다고 네 번이나 접어 꾸깃꾸깃하고 나름 투툼한 그 봉투.
  세상에나. 가슴이 철렁하면서 안심이 되는 그 기분..
  살았다. 속으로 만세를 외치며 봉투를 받으려는 내게 직원은 정중히 신분증을 요구했다. 혹시 모르니까 인적사항 좀 적어놓을 게요. 네네 그러세요. 신분증 건네고 돈을 받았다. 고스란히 다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에서 계속 그 말이 나왔다.
  돈은 다행히 카운터 앞 쪽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일단 직원이 주워서 다행이었고 그 직원이 정직해서 다행이었다. 아 정말 얼마나 고마웠는지. 돌려줄 때의 그 꼼꼼함도 놀라웠다. 화장실에 떨어졌다면, 다른 사람이 주웠다면 솔직히 그냥 가질 수도 있었을텐데.... 아직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감격하면서 거듭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아아 이 무슨 일이냐. 세상에. 돈을 다 떨구고 다니고, 정말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것인지. 정신이 번쩍 났지만 그건 순간일 뿐이었고 기운이 쪽 빠져버렸다. 얼마나 정신을 빼고 살았으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정신이 마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정신차리라고 그런 일이 있었겠지.
  코빼고 살지 말자.
  이도 저도 아니면, 늙은 건가.
  아무튼, 내 삶이 점점 시트콤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반성하는 의미에서 블로그에 주절거려본다. 주머니를 만졌을 때의 그 허전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철렁해. 히휴.

첫눈


(올해 내가 제대로 본) 첫눈. 바람이 많이 불어 마구 날리던 첫눈.
첫눈을 보면 마음이 셀렜었는데
오늘은 쓸쓸하다.
지금은 바람만 한가득이다.
바람 때문인가, 이 쓸쓸함의 근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