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2

  정줄을 놓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어제 하루.
  팩스를 보낼 것이 있었다. 두 군데에. 그런데 보란듯이 양쪽을 바꿔 보냈다. 문구점 직원에게 팩스 송부를 부탁하면서 두 군데니까 구분해주세요, 하고서는 당당히 번호는 양쪽을 바꿔 불러주었다.
  그것이 전조였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양쪽 서류가 바뀐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허둥지둥. 다시 보내려면 카페 밖으로 나가야 하고 , 그렇게 되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놋북 끼고 죽치고 앉아있을 생각이었던 내 계획이 어긋난다. 그래서 카페측에 문의했더니 고맙게도 카페 팩스로 보내주신다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서류를 다시 보내면서  일이 꼬여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 허둥지둥 게이지는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받아야 할 서류까지 생겨서, 카페의 팩스로 받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팩스는 오지 않았고, 시간은 가고, 나는 초조해지고, 팩스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운터 쪽과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바지 주머니를 만져봤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두툼한 돈봉투가 있어야 했는데, 주머니가 홀쭉했다.
  돈 좀 뽑아와. 삼십만원.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 잔소리 하려는 엄마의 말을 막으며 아 알았어! 라고 볼멘소리를 했던 전화통화가 떠오르면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튀어올랐다. 일단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옷 입다가 떨어진 건가. 이거 누가 오늘 횡재하는 거 아닌가 ㅠ 뛰어가면서도 바지 주머니를 계속 만졌지만 있을리 만무. 화장실문을 냅다 열고 카운터로 뛰어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여기 돈 들어온 거 없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지만, 그땐 저렇게 말했다(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ㅋㅋ).
  "무슨 돈이요?"
  "삼십만원이요!!"
  "어디에 들어있는데요?"
  직원의 이 말에 일단 안심이 되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은행봉투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직원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꼭지에 대고 소리쳤다.
  "수표 한 장이랑 현금 섞여있고요!"
  아아아. 직원이 봉투를 들고 나온다. 가방에 넣으면 자리 이동하느라 불안할 것 같아 잘 간수한다고 네 번이나 접어 꾸깃꾸깃하고 나름 투툼한 그 봉투.
  세상에나. 가슴이 철렁하면서 안심이 되는 그 기분..
  살았다. 속으로 만세를 외치며 봉투를 받으려는 내게 직원은 정중히 신분증을 요구했다. 혹시 모르니까 인적사항 좀 적어놓을 게요. 네네 그러세요. 신분증 건네고 돈을 받았다. 고스란히 다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에서 계속 그 말이 나왔다.
  돈은 다행히 카운터 앞 쪽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일단 직원이 주워서 다행이었고 그 직원이 정직해서 다행이었다. 아 정말 얼마나 고마웠는지. 돌려줄 때의 그 꼼꼼함도 놀라웠다. 화장실에 떨어졌다면, 다른 사람이 주웠다면 솔직히 그냥 가질 수도 있었을텐데.... 아직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감격하면서 거듭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아아 이 무슨 일이냐. 세상에. 돈을 다 떨구고 다니고, 정말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것인지. 정신이 번쩍 났지만 그건 순간일 뿐이었고 기운이 쪽 빠져버렸다. 얼마나 정신을 빼고 살았으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정신이 마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정신차리라고 그런 일이 있었겠지.
  코빼고 살지 말자.
  이도 저도 아니면, 늙은 건가.
  아무튼, 내 삶이 점점 시트콤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반성하는 의미에서 블로그에 주절거려본다. 주머니를 만졌을 때의 그 허전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철렁해. 히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