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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11.20 그 누구도 아닌

예쁜 거 발랐네

  네일케어를 받고 들어간 저녁. 방에 누워있는 엄마 옆에 가서 앉았는데 엄마가 내 손톱을 보더니 말했다.
  "예쁜 거 발랐네."
  그 말이 난 왜 마음에 남았을까.
 '이쁜 거'도 아니고 '예쁜 거'라니.
  엄마가 말한 '예쁜'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짠했는지 모르겠다.

  예쁜 것, 예쁘다, 예쁜...

하여간 나 요즘 좀 이상해.


잠깐의 펑펑눈.

아쉬운 마음에 쿠키로.

쿠키의 카메라는 정말 파이다. 쳇.

시트콤2

  정줄을 놓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어제 하루.
  팩스를 보낼 것이 있었다. 두 군데에. 그런데 보란듯이 양쪽을 바꿔 보냈다. 문구점 직원에게 팩스 송부를 부탁하면서 두 군데니까 구분해주세요, 하고서는 당당히 번호는 양쪽을 바꿔 불러주었다.
  그것이 전조였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양쪽 서류가 바뀐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허둥지둥. 다시 보내려면 카페 밖으로 나가야 하고 , 그렇게 되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놋북 끼고 죽치고 앉아있을 생각이었던 내 계획이 어긋난다. 그래서 카페측에 문의했더니 고맙게도 카페 팩스로 보내주신다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서류를 다시 보내면서  일이 꼬여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 허둥지둥 게이지는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받아야 할 서류까지 생겨서, 카페의 팩스로 받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팩스는 오지 않았고, 시간은 가고, 나는 초조해지고, 팩스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운터 쪽과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바지 주머니를 만져봤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두툼한 돈봉투가 있어야 했는데, 주머니가 홀쭉했다.
  돈 좀 뽑아와. 삼십만원.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 잔소리 하려는 엄마의 말을 막으며 아 알았어! 라고 볼멘소리를 했던 전화통화가 떠오르면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튀어올랐다. 일단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옷 입다가 떨어진 건가. 이거 누가 오늘 횡재하는 거 아닌가 ㅠ 뛰어가면서도 바지 주머니를 계속 만졌지만 있을리 만무. 화장실문을 냅다 열고 카운터로 뛰어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여기 돈 들어온 거 없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지만, 그땐 저렇게 말했다(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ㅋㅋ).
  "무슨 돈이요?"
  "삼십만원이요!!"
  "어디에 들어있는데요?"
  직원의 이 말에 일단 안심이 되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은행봉투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직원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꼭지에 대고 소리쳤다.
  "수표 한 장이랑 현금 섞여있고요!"
  아아아. 직원이 봉투를 들고 나온다. 가방에 넣으면 자리 이동하느라 불안할 것 같아 잘 간수한다고 네 번이나 접어 꾸깃꾸깃하고 나름 투툼한 그 봉투.
  세상에나. 가슴이 철렁하면서 안심이 되는 그 기분..
  살았다. 속으로 만세를 외치며 봉투를 받으려는 내게 직원은 정중히 신분증을 요구했다. 혹시 모르니까 인적사항 좀 적어놓을 게요. 네네 그러세요. 신분증 건네고 돈을 받았다. 고스란히 다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에서 계속 그 말이 나왔다.
  돈은 다행히 카운터 앞 쪽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일단 직원이 주워서 다행이었고 그 직원이 정직해서 다행이었다. 아 정말 얼마나 고마웠는지. 돌려줄 때의 그 꼼꼼함도 놀라웠다. 화장실에 떨어졌다면, 다른 사람이 주웠다면 솔직히 그냥 가질 수도 있었을텐데.... 아직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감격하면서 거듭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아아 이 무슨 일이냐. 세상에. 돈을 다 떨구고 다니고, 정말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것인지. 정신이 번쩍 났지만 그건 순간일 뿐이었고 기운이 쪽 빠져버렸다. 얼마나 정신을 빼고 살았으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정신이 마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정신차리라고 그런 일이 있었겠지.
  코빼고 살지 말자.
  이도 저도 아니면, 늙은 건가.
  아무튼, 내 삶이 점점 시트콤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반성하는 의미에서 블로그에 주절거려본다. 주머니를 만졌을 때의 그 허전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철렁해. 히휴.

첫눈


(올해 내가 제대로 본) 첫눈. 바람이 많이 불어 마구 날리던 첫눈.
첫눈을 보면 마음이 셀렜었는데
오늘은 쓸쓸하다.
지금은 바람만 한가득이다.
바람 때문인가, 이 쓸쓸함의 근원은.

-

  그러다가 장마가 찾아왔고,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달리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장마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마도 나나가 아니라 그녀에게, 그것도 문자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를 건 까닭은 어쩌면 장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차라리 쏟아져 내리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흡족할 것을, 내리는 둥 마는 둥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장마에 대해서, 균질하게 하늘을 가득 메운 무미건조한 회색에 대해서, 뜨겁고 뜨겁고 뜨겁기만 한 여름 햇살을 향한 본능적인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장마가 계속 이어지는 탓에 달리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그녀가 내게 말했다. "맞아. 좋았어. 우리 참 좋았어. 그렇긴 하지만 우린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그 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또 슬프게 만들었다. 우선 '맞아'라는 말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그렇긴 하지만'이라는 접속사 때문에. 맞아. 그렇긴 하지만. 맞아. 그렇긴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간 나는, 예컨대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주방 테이블 위에 식빵을 일렬로 쭉 늘어놓으면서, 혹은 도서관 앞 휴식공간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마치 나의 앞날처럼 불안하고 흐릿하기만 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말을 되뇌었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中

-

  술에 취했으므로 우리는 차창을 다 열어놓았다. 어디선가 탁탁탁 규칙적으로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머리카락이 자꾸만 열어놓은 창문 바깥으로 흩날렸다. 종현의 택시는 한남동을 지나 소월길로 접어들었다. 종현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바흐의 칸타다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들으며 어두운 도로를 바라보다가 내가 "종현아"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종현아"라고 한번 더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자, 종현은 전방의 도로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종현의 손을 뿌리쳤다. 종현이 다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고 길 옆으로 지나가는 나무들을 바라봤다.

-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中 

시트콤

며칠 코감기가 떨어지질 않아서 병원에 갔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요.
약을 처방하던 의사가
"콧물약은 좀 졸릴텐데 괜찮으세요?"
구부정하게 앉아서 증상을 얘기하고 있던 나는 일순 허리를 꼿꼿히 펴고 대답했다.
"졸리면 좋죠!"
터무니없이 큰 내 목소리에 모니터를 향해있던 의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시 쪼그라드는 내 목소리.
"잠을 원체 잘 못 자서요...."

저녁약,이라고 적힌 약봉지가 지금 내 옆에 있다.
저녁을 먹고 저녀석을 먹으면 푹 잘 수 있으려나.
오늘 밤을 기대해본다.


삶이 시트콤이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을까




Minolta X-700
Perutz Primera 200

2009 독서 리스트

레고로 만든 집, 윤성희 (민음사)
완득이, 김려령 (창비)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열림원)
무중력증후군, 윤고은 (한겨례출판)
88만원 세대, 우석훈/박권일 (레디앙)
여행자 토쿄, 김영하 (아트북스)
소설을 살다, 이승우
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연수 외 (문학사상)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살림)
양치는 언덕, 미우라 아야코 (소담)
꽃피는 고래, 김형경 (창비)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2009), 고은주 외 (현대문학)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작가정신)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문학동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랜덤하우스코리아)
그늘의 발달, 문태준 (문학과지성사)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김혜리 (씨네21)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작가정신)
알파의 시간(2009년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하성란 외 (현대문학)
지금 행복해, 성석제 (창비)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스페인 산티아고 편), 김남희 (미래인)
노서아가비, 김탁환 (살림출판사)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은행나무)
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문학동네)
대성당, 레이먼드카버 (문학동네)
열외인종 잔혹사, 주원규 (한겨례출판사)
세계의 끝 여자 친구, 김연수 (문학동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 (한겨례 출판)
눈의 여행자, 윤대녕 (중앙M&B)
어느덧 일주일, 전수찬 (문학동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문학동네)
작별, 정이현 (마음산책)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문학동네)
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은행나무)
1Q84(BOOK2),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제중원(1, 2), 이기원 (삼성출판사)
아웃, 주영선 (문학수첩)




+ 고루 고루 많이 읽읍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모르겠다면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나는 볼 수 없는
내 뒷모습같은
그런 마음이 있는 걸까.

그래서 볼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