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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1 사물이 말을 걸어올 때,
  2. 2008.06.23 8

사물이 말을 걸어올 때,


  어떤 사물이, 또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그렇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보거나 듣는 그 순간에 즉각적으로 마음을 울릴 때도 있지만 오래도록 잊혀졌다가 살그머니 살아나 제 어깨에 손을 올려놓기도 합니다. 그때, 그 손길에 돌아보고 그 말뜻을 되새기고 받아적는 제 손은 한없이 굼뜨고 무딥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 무성히 벋은 뿌리에 든 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작 말라죽은 가지 하나를 붙들고 뒤척일 때가 더 많습니다.

이혜경, 제47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 中


잠은 언제나 운모조각처럼 얇았고, 작은 소음이나 커튼 틈으로 스며든 빛살에도 쉬 바스러졌다. 큰 독에 장아찌 담그듯 차곡차곡 집어넣고 넓적한 돌로 단단히 눌러놓은 기억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돌의 무게를 견뎌내고 솟구치려는 기운은 밤이면 더 기승했다. 하루에 너댓 편의 꿈을 꿨다. 꿈속에서, 발효해버렸으면 싶은 기억은 양념이 다 삭아 어우러진 신김치 속에서도 제 맛을 주장하는 생강조각처럼 도드라졌다.

- 이혜경,  섬


* 마음에 결을 남기는 문장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