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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5 문학
  2. 2008.08.05 공항

문학

  지난 백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동양인 이민자들이 그렇게 젖은 눈으로 금문교를 바라봤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문교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목소리가 숨어 있다. 귀를 기울이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학은 그런 목소리를 외부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가 그 목소리로 증명된다. 반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 즉 입술이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디부터 정치적이다.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학이란 그들을 대신해 소리를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문교가 있는 한, 누군가는 이민자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드러낼 것이다.
  치카노 문학이라는 것 역시 그런 식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버클리에서 문학행위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까닭 역시 여기에는 아직도 말을 빼앗긴 존재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한국에는 이제 더이상 말을 빼앗긴 존재가 없다는 뜻일까? 금문교를 바라보면 그런 의문이 자꾸든다.

<중략>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쓰게 될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혹시 한국에서 자꾸만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문학이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쓸 수 있을 때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써야만 하지 않을까?

- 김연수, <여행할 권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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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문학이란, 문학이란.....
킬킬대며 웃다가 멈칫, 마음이 숙연해지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읽었던 문장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게 되는 김연수의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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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꽤 괜찮은 책을 만난 듯하여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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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여권에는 나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기재돼 있다. 이름과 국적과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 직장에서의 평판은 어떤지, 가족들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따위는 불필요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장래희망이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가격 등도 필요없다. 출생증명서에 생물학적 사실관계를 밝히는 숫자만 기재돼 있는 것처럼 여권에도 오직 생물학적인 '나'에 대해서만 적혀 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느 시공간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최소한의 나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우화처럼 느껴진다. 거기에는 치명적인 진실이 있다. 공항을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는 그저 여권에 적혀 있는 생물학적인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가 어디에 도착하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란 존재는 이름과 국적과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것들, 그러니까 사회적인 '나'는 등뒤에서 닫히는 출국장의 문 그 너머에 남겨져 있다.

-중략-

  두말할 나위 없이 삶은 영원하다. 다만 우리를 스쳐갈 뿐이다. 출국심사대에세 이제 드디어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고, 그리하여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다면,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면서부터는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느끼게 된다. 입국장의 문이 열리면 거기 수많은 사람들이 귀국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친지이거나 친구이거나 동료들이다. 그들은 그저 저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누구인지 일깨워준다. 그들은 여행자를 찾는 순간, 미소를 짓거나 웃음을 터뜨린다. 극적으로 만나게 되어 눈물을 흘리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가족을 보며 화를 내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였던 나는 곧 그 사이의 어떤 것으로 바뀐다. 그 어떤 것은 공항을 빠져나가 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늘 먹던 반찬으로 밥을 먹고 나면 거기가 집임을 실감할 것이다. 공항에 들어서기 전까지 일어났던 일들은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완전히 타지사람이었고 여행자였다. 공항은 마치 생을 바꾸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며칠, 혹은 몇달이 지난 뒤에 우연히 여권을 보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권에 기재된 바로 그 사람이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물론 타지를 떠돌 때였다. 그럼 집에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영원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그는 다시 공항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고, 그리고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 여행할 수 있을 뿐이다. 공항에서 우화는 반복된다. 결국 우리는 무례한 타지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덧없이 반복되는 존재일 뿐이다. 공황의 우화에 주제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 김연수, <여행할 권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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