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낮에 도서관에 가서 밀린 일을 쫌 하고 그보다 많이 졸고 그리고 책을 봤다. 그리고 대출했다. 가방에는 놋북이 있어 무거웠으므로 귀찮아도 손에 들고 집에 가려다가, 화장실엘 들렀다. 화장실 안에 있는 선반 위에 들고 있던 책을 올려 놓는데 폭이 좁은 선반은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그래서 쫌 불안했지만 설마 했었고, 솔직히 그보다는 그 잠깐을 위해 책을 가방에 넣기가 귀찮아서 균형 맞춰서 책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문 위에 있는 고리에 가방을 거는 순간 책이 홀랑, 변기 속으로 다이빙했다.
  아아.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재빨리 건졌다(상상하진 마시라 볼일 보기 전이었음;;;). 다행히 책이 펼쳐지면서 떨어졌는지 폭삭 빠지진 않았더라. 휴지로 물기를 닦아냈는데(아아 내 책이었으면 그냥 버렸을 텐데) 어쨌든 젖어서 우글거렸으니... 이를 어쩌나 잠시 망설이다 자료실 쪽으로 갔다. 책을 내밀면서 저기요, 죄송한데요. 책을 물에 빠뜨렸는데요(차마 변기 속의 물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어떻게 변상해야 하나요...... 결론은 같은 책을 사오는 것으로 변상하고 훼손된 책은 내가 갖는다는 것. 아... 당연히 변상해야 할 일이고 신작이라 구하기도 쉬우니 다행이었지만.. 그 찜찜함이라니...
  책이 변기에 빠진 걸 당연히 모르는 도서관 자원봉사자 분은 웃으면서 새 책으로 변상하시고 이 책은 가지시면 된다고 했지만, 그래서 사실은 변기에 빠진 거라서 갖기가 뭐해요 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대출해서 들고 나온 나의 그 찜찜한 걸음걸이라니... 변상은 책값을 지불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거다 나는. 그 책을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펴 볼 엄두도 못내고 최대한 손 끝으로 들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어찌나 찜찜하던지. 이 책을 버릴 수도 없고 읽자니 찜찜하고.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책 주문하고 그 책은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아아아아아아.



도서관에서 변기 청소는 자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