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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0 상심에 이러지 말자 (9)

상심에 이러지 말자

<전략>

  그날도 잠에서 덜 깬 멍청한 표정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집게로 창가 재떨이와 소변기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이 주의 금언'을 언뜻 봤다. 계속 청소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다시 봤다. '논어'의 한 구절이었다.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며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樂而不淫 哀而不傷



  오줌이 묻은 양철 집게를 들고 서서 나는 웃었다. 한참 동안 웃었다. 웃음을 그치고 담배꽁초를 줍는데 다시 배시시 웃음이 터져났다. '이러지 말자'가 아니라 '이르지 말자'라고 해야 옳았기 때문이었다. 자꾸만 내 머릿속으로는 공자님이 이른 아침 왜 가야만하는지도 모르고 가야만 하는 부대 화장실에서 집게로 담배꽁초를 줍는 내 소매를 붙잡고 '김 일병, 이러지 말자. 우리 아무리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라고 애원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알겠습니다.
  보통의 남자들이 들으면 나를 향해 더이상 던질 비웃음이 없어 안타까워하겠지만, 방위병 생활을 하면서 난 참 많은 걸 배웠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면 현역병이든 방위병이든, 심지어는 예비군이든 총알을 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그때 처음 배웠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덤으로 배웠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 잘못 쓴 금언만큼 큰 깨달음을 주지는 않았다. 삶의 길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상심에 이러면 안된다.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잘 살아보자.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

얼마나 웃었는지, 이 글을 보고.
전철을 타고 가다가도 화장실 거울을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웃음이 났다.
슬픔에 이러지 말자, 슬픔에 이러지 말자. 이 문장만 생각하면 왜 그리도 웃음이 새어나오던지.
아, 얼마나 절묘한가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날 때, 분할 때, 짜증날 때면 이렇게 중얼거리는 나를 보곤한다.
슬픔에 이러지 말자. 짜증에 이러지 말자.

아, 정말. 짜증에 이러지 말자. 상심에 이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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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요즘들어 더,
작가 김연수에게 반하다.
최근 출간한 '여행할 권리'도 기회되시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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