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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1 벼랑 위의 포뇨 4

벼랑 위의 포뇨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했더랬다. 의자에 몸을 한껏 깊숙이 파묻고 심각하지 않은 마음으로 볼 영화가 필요했다.

사람이 되고 싶은 물고기 포뇨에게 인간 세계는 그저 신기하기만 한 세상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따뜻하고 유쾌하다는 것.
기본적으로 애니매이션이라는 장르가 아이들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해도,
이 영화 참 유쾌하고 기분이 좋다. 뭔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을 단순하다는 말로 오해하지는 마시길.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이라고 하기에 포뇨의 눈망울은 너무 맑다.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 "포뇨 소스케 좋아" 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잃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포뇨는 걱정이 없다.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걱정하고 심각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눈 앞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고 그것을 나름의 방법으로 소화시킨다.
그것이 소스케가 돌아오지 못 하는 아빠에게 서툰 불빛 신호(?)로 건네는 단순하지만 실은 가장 중요한 말이든,
엄마를 찾아 가는데 필요한 배를 크게 만드는 포뇨의 마법이든,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포뇨의 아빠는 금기를 쥐고 접근하지 못하게 하지만 포뇨에겐 그런 것 쯤 별 것 아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하나. 자신 역시 사랑을 위해 사람이기를 포기한 장본인이면서 왜 포뇨가 인간이 되기를 막는 것일까?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인가? ;;)
마을에 쓰나미가 오건 말건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파도 위를 뛰어다니는 포뇨를 보고 있노라면
아 어떻게 하지, 저러면 안되는데, 큰일나는데, 따위의 근심들은 금세 별 것 아닌 게 되고 만다.
아, 저 천진한 꼬마를 어쩌면 좋아!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하지만 포뇨는 다르다.
사랑한다면,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희생하는 방법을 택할 게 아니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함께 행복한 것이 옳은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래서 포뇨는 아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껏 소스케에게 간다.
누구도 거기에 왜,라는 질문을 달지 않는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물고기 포뇨라는 걸 알아보는 소스케와,
폭우 속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원래 물고기였다고 말하는 포뇨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소스케 엄마의 행동은
그래서 더욱 따듯하다.
소스케와 포뇨는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길을 간다.
장난감배를 크게 만드는 것은 포뇨의 마술이지만,
마술이 풀렸을 때 포뇨의 손을 잡고 안아주는 건 소스케다.
사람이 되어 소스케 옆에 있고 싶다고 바다를 건너 온 것은 포뇨이지만,
그런 포뇨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는 건 소스케다.
그들은 그렇게 타의가 아닌 자의로 삶을 선택하고
그래서 포뇨는 인간이 된다.
그 시작이 비록 소스케의 피가 포뇨의 몸에 흐르게 되었기 때문이라도,
소스케로 하여금 포뇨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것은 포뇨가 아닌가.
소스케는 포뇨가 인간이든 물고기이든 상관없다.
처음 포뇨를 만난 날 물고기 포뇨를 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소스케가 아니던가.
상대의 상황 따위 전혀 상관없는 소스케에게 포뇨의 엄마가 묻는 물음은 그래서 참 헛헛하면서도,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싸한 마음이 되었다.
영화는 포뇨가 인간이 된 이후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건가?
어쩌면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던 비극적 스토리의 주인공인 인어공주는 없다.
자신의 식대로 행복을 찾고 결국은 그 행복의 주인공이 된(혹은 될) 귀여운 포뇨가 있을 뿐이다.


+
저 멀리 바닷가에서 아빠와 소스케가 불빛으로 나누는 대화.
그리고 토라진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스케가 던지는 한 마디에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아 너무 따뜻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해피엔딩이라 좋다.
역시 나는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보다.
(지극히 가벼워진 스토리에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 팬들에겐 조금 실망일지도^^)


                                                                                                                             사진 출처 : 네이버 무비 '벼랑 위의 포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