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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1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내가 액자 그림을 오래 올려다보고 있은 모양이다. 장포수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계속 궁금해하고 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바위 그림이 왜 중요해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또 가만히 있었다.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나은지, 기억하는 게 좋은지.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다른 방식으로 물어보았다. 기억하는 일이 힘들고 따가워도 기억해야 하는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오래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아버지가 기증한 물건들이 전시된 방을 바라보았다.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걸."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에서 반복했다.

김형경, 꽃피는 고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