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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4 -
  2. 2007.12.29 뻘 같은 그리움
  3. 2007.12.29 역전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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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가지꽃 꽃그늘 하나 엷게 생겨난 줄로만 알았지요

  그때 나는 보라색 가지꽃을 보고 있었지요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했으나

  새의 울음이 나뭇가지 위에서 사금파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것만을 보았지요

  당신은 내 등 뒤를 지나서 갔으나

  당신의 발자국이 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것만을 느꼈었지요

  그때 나는 참깨꽃 져내린 하얀 자리를 굽어보고 있었지요

  이제 겨우 이별을 알아서

  그때 내 앉았던 그곳이 당신과의 갈림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  문태준, 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뻘 같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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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었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고 있다는 얘기


                                                                                                              -문태준, 뻘같은 그리움


휘드마이크론 / 후지오토오토200

역전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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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 역전 이발,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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