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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7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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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마셔, 튀김이 좀 딱딱해, 만든 지 오래된 것 같아, 라는 노목희 말의 그 사소함과 명료함이 문정수는 문득 슬픔으로 느껴졌다. 슬픔은 난데없고 가늘고 날카로웠다.


노목희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서 문정수의 잔에 따랐다. 차가운 소주가 목구멍을 훑고 내려갔다. 문정수의 야근일수는 한 달에 13일 정도였다. 문정수는 새벽에 마시는 소주 맛의 긴장에 익숙해 있었다.
- 아, 시원해. 목구멍 속에서 눈보라가 날리는 것 같다. 새벽엔…….
- 새벽 소주에 젖어드는 거겠지. 점점…….


젓가락으로 김치를 마주 잡고 찢어 먹는 하찮음이 쌓여서 생활을 이루는 것인가. 그 하찮음의 바탕 위에서만 생활은 영위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소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의의 들판으로 생활은 전개되는 것인가. 그 사소함이 견딜 수 없이 안쓰럽고 그 적의가 두려워서 나는 생활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이렇게 쭈볏거리고 있는가.


해망의 빈 시간은 난감했다. 저녁의 빈 시간들은 엉성했다. 갯고랑 수로의 밀물이 노을에 붉었고 공룡 발자국에 고인 구정물이 붉었고 원효의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붉었다. 시간의 미립자들 틈새로 노을은 스몄는데 노을이 시간의 그물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서 시간은 노을이 묻지 않았다.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문정수는 혼자 저녁을 먹었다.


문정수의 목소리는 메말랐고, 자음이 모음에 잠겨서 이명처럼 들렸다.


- 김훈, 공무도하 中




+) 아무렇지 않은 듯 날카롭게 가슴을 치는 김훈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