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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간다.
속절없이 간다.
퇴근하는데,
어제와 같은 시간에 나왔는데
주변이 밝다.
아주 밝은 게 아니라
어제보다 아주 조금,
그렇지만 눈치는 챌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
해가 길어진 걸까.
고개한번 갸웃하는 이런 여자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어지러워서 술에 취한 사람마냥 조금 위태롭게 걷는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1월도 하순.
곧 봄이 오고 여름도 오고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듯 가을도 올테지.
그래서 다행이다.
내일도 나는 퇴근길 빛깔이 달라지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지.
그때는 가지꽃 꽃그늘 하나 엷게 생겨난 줄로만 알았지요
그때 나는 보라색 가지꽃을 보고 있었지요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했으나
새의 울음이 나뭇가지 위에서 사금파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것만을 보았지요
당신은 내 등 뒤를 지나서 갔으나
당신의 발자국이 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것만을 느꼈었지요
그때 나는 참깨꽃 져내린 하얀 자리를 굽어보고 있었지요
이제 겨우 이별을 알아서
그때 내 앉았던 그곳이 당신과의 갈림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 문태준, 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일러 주지 않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서 나 지금 여기 이렇게 있을 수밖에.
그럴 수밖에.
지금이
2012년이 아니라 2013년이라는 것이,
그리고도
8월,
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
눈을 꿈뻑이며, 나 그냥 여기 이렇게 있을 수밖에.
꿈이었으면. 그랬으면.
이런 철지난 뽕짝 가사 같은 말들을
중얼중얼 중얼댈 줄이야.
누가 나를 좀 깨워주었으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中
이건 뭐, 졌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요즘,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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