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름은 커다란 통 속에 들어 있는 화려한 꽃다발 같다. 닫힘 없이 열려 있다. 세련되었고 소박하다. 애오이처럼 신선하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을 전염시키는 계절이기도 하다.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이 영원히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람을 집중시키다가 어느덧 가버리는 게 여름이다. 한없이 게으름을 부려도 좋을 것 같이 긴 것 같으나 금세 입추를 맞이하게 되는 계절이다. 아직 가을 겨울이 남아 있는데도 여름을 보내고 나면 한 해를 다 살아버린 듯하다. 돌아오는 가을은 짧고 겨울은 다음 해와 섞여 있는 탓일 것이다. 그래서 한해 중에 여름을 보내고 나면 시간을 뭉텅이로 도둑맞은 느낌이 든다.

신경숙, 자거라 네 슬픔아 中





이맘때면 생각나는 글귀.


올 여름의 끝자락에는,
뭉텅이로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어김없이 어느새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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